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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PTICAL activity

여전히 살아 있는 비합리적 믿음 '악령'(II)

경찰조사에서 용의자들은 이 모든 게 구마(驅魔)의식 즉, 악령을 쫓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2016년 1월 2일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1014회)에서는 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보도됐다.[각주:1] 그 내용에 따르면 독일 행을 주도한 여성이 구마의식을 빌미로 다른 일행을 조종하고 착취하려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 독일의 수사 당국에서 공식적인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글에서는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들 일행이 보여준 비합리적인 행위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비합리적 신념에서 비롯된 비극 


용의자와 피해자들은 모두 세 가족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며 친분을 쌓았고 자녀의 유학과 사업을 위해 함께 독일로 떠났다. 이들을 독일로 이끈 것은 마흔네 살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녀(아들 21세, 딸 19세)와 함께 독일에서 사업을 벌일 계획이었다. 이 여성은 피해자인 다른 두 여성에게 자녀의 독일 유학을 권했고, 이 두 여성과 자녀 등 열 명이 함께 독일로 떠나게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독일로 출국하기 전 이들 일행에서 어떠한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두터운 신앙심을 갖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평판이 좋았다. 


하지만 독일에 도착하고 이들의 독일 행을 주도했던 여성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행 가운데 가장 어린 사람을 부마자(付魔者)로 지목해 구마의식을 행했고 그를 한국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악령이 옮겼다며 연이어 다른 일행을 부마자로 몰아 구마의식을 행했다. 


이 사건은 그 동기를 떠나 여러 모로 의문점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한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끔찍한 구마의식에 그녀의 아들(15세)이 참여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는 경찰에 체포된 이후에도 매우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것은 그 행위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는 신념에서 비롯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친모가 죽음에 이르도록 그 소년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끔찍한 폭력이 악령 퇴치라는 비상식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일행은 이에 저항하지 않았다. 과연 이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건에 대한 갖가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몇몇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백석대 김태경 교수(특수심리치료)는 피해자들이 “신실하지 않거나 모성애가 강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신학)는 피의자가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했다는 점을 들어 종교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 그는 일행이 비상식적인 행동에 빠져들게 된 과정이 바이트모델(BITE Model)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광신도의 비합리성을 설명하는 ‘BITE Model’ 


Steaven HassanSteaven Hassan. wikipedia

바이트모델은 광신집단이 그 구성원들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인드컨트롤을 설명하기 위한 생각의 틀이다.  바이트(BITE)는 행동 통제(Behavior Control),  정보 통제(Information Control), 사고 통제(Thought Control), 감정 통제(Emotion Control)의 두음문자를 따서 만든 조어(造語)다. 바이트모델을 주창한 사람은 정신건강 전문상담가(Mental Health Counselor)인 스티븐 하산(Steaven Hassan)이다. 그는 현재 사이비종교 피해자의 탈출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스티븐 하산 역시 열아홉 살에 통일교에 포섭돼 지도부의 핵심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가족의 사랑과 노력으로 통일교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비슷한 피해자를 돕고 있다. 하산은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마인드컨트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산은 마인드 컨트롤을 한 사람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으로 바꿔 놓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각주:2]


하산은 모든 마인드컨트롤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누군가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거나 자신의 삶에 주도적인 힘을 갖도록 사용된다면 마인드컨트롤의 효과는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인드컨트롤의 통제위치(locus of control)가 외부적이거나 이것이 누군가의 사고나 독립적인 행위를 훼손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파괴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이비종교가 구성원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는 마인드컨트롤 방식인 바이트모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B: 행동통제 

행동통제는 개인의 신체적인 활동과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다. 통제 대상에는 옷과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식단, 휴식, 수면, 누구와 어디에 기거할 것인지 등 사소한 행동까지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규제하고 집단적 행동과 사고를 권장한다. 또한, 엄격한 규율, 행위에 따른 보상과 응징을 통해 특정한 행동을 강화시킨다. 


2) I: 정보통제 

광신집단은 구성원이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통제하고 정보와 기억을 왜곡한다. 이를 위해 휴대폰 통화와 문자, 인터넷 접속 등을 제한한다. 집단 내에서 등급과 임무에 따라 정보를 통제하고 다른 구성원을 감시하도록 독려하기도 한다. 


3) T: 사고통제 

광신집단은 구성원에게 집단의 논리가 진리라는 생각을 내면화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흑백논리를 조장하거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하나를 결정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또한,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언행을 금지하는 등 교리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통제한다. 그 대신 찬송과 기도, 명상 등을 통해 긍정적인 생각만 허용함으로써 현실검증을 무력화시킨다. 


4) E: 감정통제 

광신집단은 구성원을 미혹하기 위해 감정 폭을 조작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죄책감과 공포 등의 감정을 활용한다. 이로써 구성원이 외부 세계나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향수나 분노, 의심의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감정정지(emotion-stopping) 기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다음으로 구마의식 사건의 일행들에 바이트모델을 적용해 그들이 부조리한 상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살펴보자. 


우선, 일행들이 독일에서 매우 집단적인 행동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일행의 숙소가 있던 슐츠바흐 주민들은 그들이 항상 함께 다녔고 집단적으로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일행 중 부마자가 지목되면 모두가 구마의식에 참여하도록 강요된 것으로 보인다. 일행 가운데 첫 번째로 부마자로 지목돼 한국으로 쫓겨온 소년(13세)은 리더(독일 행을 주도한 여성)가 일행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시켰다고 증언했다. 그는 맞기 싫어 부마자 행세를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부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에 고립된 일행은 완벽하게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슐츠바흐 주민들이 인사를 건네도 못 본 척하며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는 증언으로 보아 현지인과 이들 일행의 의사소통 역시 전무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리더는 일행이 독일 현지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고 한다. 깊은 고립감에 빠진 일행들은 리더에게 더욱 더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같은 교회의 교우였다는 점에서 사고통제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하나의 교리와 의식을 경험하며 공통된 신앙을 쌓아 온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의 유학을 위해 독일 행을 결행한 피해자들의 사고는 더욱 경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타국에 고립된 상황은 이들을 더욱 맹목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들이 “신실하지 않거나 모성애가 강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김태경 교수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일행의 생각이나 행동과 더불어 감정 역시 리더에 의해 통제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피해자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첫 번째 부마자였던 열세 살 소년을 한국으로 쫓아버린 이유가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와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공포심 역시 생각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또, 일행이 일방적인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배경에는 왜곡된 죄책감이 있었다. 슐츠바흐 숙소 차고에서 발견된 여성은 부마자로 지목돼 심한 구타를 당해야 했다. 그녀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신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했지만, 리더는 그녀의 몸에 악령이 들렸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에 리더는 그녀에게 “네덜란드나 프랑스에서 알아서 살든지 죽든지 하라”며 내쫓았다. 리더는 그녀를 내쫓기 전 다른 일행에 대해 “순종을 잘 한다”라거나 “그래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칭찬하면서 피해자에게는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 


스티븐 하산은 이러한 마인드컨트롤에 걸리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그도 통일교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세뇌된 로봇(brainwashed robot)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하산은 그것을 예상된 박해로 받아들였고, 박해는 그를 더욱 집단에 전념하게 했다. 그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자신이 마인드컨트롤을 당했다는 것을 특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각주:3] 즉, 이 말은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이트모델은 광신집단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산은 바이트모델을 인신매매나 테러리즘에도 적용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인드컨트롤은 사실상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는 집단적인 의례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이트모델에 따르자면 그러한 의례와 교육은 행동과 정보, 사고의 통제를 의미한다. 또한, 신앙에 회의를 품는 것을 많은 종교조직은 금기시하고 있다. 종종 사회 문제가 되는 다단계판매 조직을 비롯, 심지어 군대 등과 같은 특수한 집단 등에서도 조직이 부여한 정체성을 구성원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도록 특별한 의식과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본다면 배타적 성격을 갖는 조직이나 구성원의 결속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서는 바이트모델과 유사한 마인드컨트롤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트모델과는 또 다르게, 사람이 스트레스나 극단적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누구나 마음과 행동을 조종당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심리 조작은 스스로 주체적인 선택을 했다고 믿게 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행동할 수 없는 수동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피로나 불면, 영양부족 등을 유발해 뇌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하면 뇌의 처리능력이 저하되고, 이때 그 사람의 주체적인 판단능력을 빼앗기가 쉬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되면 새로운 정보나 신념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각주:4]


터널터널. wikipedia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아리엘 메라리(Ariel Merari)는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터널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터널은 외부와 차단된 긴 통로다. 그 속에서 시야는 출구로 들어오는 빛에만 집중된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고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하나의 목적만 눈에 들어오는 ‘시야협착 증세’를 갖게 하면 평범한 사람도 무서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터널 효과는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동료 등과의 사회관계를 통해서도 조성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구성원은 집단의 규칙과 가치관에 자기도 모르게 지배당하게 된다. 이후 마지막 단계로 ‘인정욕구의 연쇄작용’을 조성하게 되는데, 이는 테러를 실행하기 전부터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거나 그가 숭배하는 지도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 사후 공개될 유언을 미리 비디오로 찍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의 가족도 영웅을 배출한 집안으로서 영예를 얻고 경제적 지원을 받도록 한다. 이쯤 되면 그의 죽음은 기정사실이 되고 사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영웅답게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만 남게 되는 것이다.[각주:5]


살펴본 바와 같이 마인드컨트롤이나 심리조작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과 결함을 이용한 것으로 이미 현실 세계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은 일이 특정 부류에만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 누구나 유사한 환경에 노출되면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고초를 겪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 사건에서 리더를 좇아 구마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공범이 되어버린 일행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내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이들이 잘못된 현실인식과 신념에서 비롯된 자신들의 행위를 각성하며 받게 될 정신적인 충격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을 두고 심리학자들이 가해에 참여한 일행들의 2차 피해를 예상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 관련 이야기: 여전히 살아 있는 비합리적 믿음 '악령'(I)

http://kangcd.tistory.com/29

※ 관련 소식: 獨 법원, 구마의식 사망 사건 재판

https://kangcd.tistory.com/44?category=559336

  1.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2016년 1월 2일 SBS에서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1014회)를 참고함. [본문으로]
  2. 스티브 하산의 홈페이지 (www.freedomofmind.com)의 "Bite model of unethical influence" 페이지를 참고 했음. [본문으로]
  3. 『Combatting Cult Mind Control』. Steven Hassan. Park Street Press. 1998. religiouscultsinfo.com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4.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경향신문. 2014.01.02. [본문으로]
  5.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 오카다 다카시, 어크로스, 환선종 옮김. 2014.12.18. 나는 아리엘 메라리의 이론에 대해 다소 비판적 입장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 이유는 모든 테러를 심리조작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테러라는 행위가 놓여 있는 탄압과 저항이라는 정치, 사회적 맥락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