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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의 끝없는 성추문과 깊은 불평등

문화‧예술계의 끝없는 성추문과 깊은 불평등 

#MeToo는 우리 사회의 잠재된 힘을 깨울 것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이하 미투)은 미디어가 비추는 현실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바람에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비상하던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지난 정권의 부패를 겨누던 예봉도, 진영에 치우치지 않는 포용성도 저주에 걸린 듯 빛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쌓아온 업적도, 국민배우라는 명성도, 소소하지만 성실함의 즐거움으로 불평등에 짓눌린 세대를 위로하던 다정함도 모두 허사다. 기압의 차가 바람을 키우는 것처럼, 미투의 바람은 미디어가 낳은 허상과 실제의 괴리만큼 거친 소리를 내며 우리 사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 '나쁜 남자의 포스터김기덕 감독이 연출하고 조재현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나쁜 남자>. 김기덕과 조재현의 상습적인 성폭행 의혹이 폭로되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섹슈얼리티와 소통

평등이란 기계적 동일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흔히 참된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함으로써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미투 역시 부당한 권력과 차별적인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평등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나름의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폭로되는 미투에 대해 불편한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투의 대상에 ‘못마땅한 애정공세’(주로 여성의 입장에서)까지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미투가 성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갈등의 저변에는 남성과 여성이 가진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다름’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음담패설에 가까운 ‘야설[각주:1]’이라는 인터넷 콘텐츠와 장르 문학 가운데 하나인 ‘로맨스’의 차이가 이점을 잘 보여준다. 야설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주로 남성인 반면, 로맨스는 주로 여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출판계의 한 지인은 이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가진 ‘섹슈얼리티의 다름’을 의미한다고 했다. 문제는 성 정체성의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신념이나 기질에 따라서도 섹슈얼리티는 제각각일 테고, 이에 따라 갖게 되는 성적 판타지 역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를 유혹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는 일련의 과정을 일종의 ‘소통’으로 본다면, 섹슈얼리티의 다름은 곧 ‘소통’ 혹은 ‘의미 공유’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적 소통’의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노력에 자신에 대한 성찰 역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폭력이란 이러한 노력과 과정을 건너뛴 일종의 폭거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영화계의 실상을 폭로하는 한 여배우의 생생한 증언이 일방적 폭거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여배우를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부르는 식의 언어폭력은 일상이에요. … 어떤 감독은 여배우들을 성폭행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고 다니는데,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소문날까 숨을 죽이죠. 이게 영화계의 현실이에요.”[각주:2]


■에로티시즘과 성폭력

영화계와 연극·연예계의 인력 풀(pool)은 폭넓은 교집합을 공유하며 유사한 관행을 형성해왔다. 이 영역들 내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은 공공연하게 떠도는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미투는 그 소문이 전혀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해준다. 더 나아가, 2016년 문화계 성 추문은 성폭력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의 특성상 성폭력은 그 사회의 불평등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와도 같다. 말하자면, 문화·예술계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은 불평등한 권력구조 안에서 벌어진 ‘갑질’ 사건인 셈이다. 어떤 이는 이를 에로티시즘(eroticism)이라며 에둘러 변호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사건의 본질을 한참 벗어나 논점을 흐리는 비겁한 편들기일 공산이 크다.

에로티시즘이란 성적 이미지, 즉 섹슈얼리티를 예술작품의 구조적 소재로 차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섹슈얼리티는 본래의 영역에서 벗어나 작품에 내재된 질서 안에 놓이게 되고, 그럼으로써 일종의 전복(顚覆) 효과를 만들어낸다. 섹슈얼리티는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매우 노골적으로 재현됨으로써 충격을 주기도 한다. 비록 그 표현이 노골적이더라도, 예술작품으로 재현된 색슈얼리티는 일상과는 거리를 갖는 제의성(祭儀性)을 갖는다. 예를 들어,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 나신(裸身)을 훔쳐보도록 디자인된 뒤샹(Marcel Duchamp)의 <에탕 도네>(Étant donnés) 등은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지만, 그 함의는 대상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선다. 


몸, 특히 성기는 일종의 금기다. 하지만, 금기는 폭로됨으로써 우리의 금기를 제어하는 사회적 장치로 우리의 시선이 흐르도록 이끈다. 따라서 에로티시즘이란 수단이며 전술인 셈이다. 하물며, 미투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소설가, 하일지가 언급한 김유정의 <동백꽃> 역시 에로티시즘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은 공교롭다.

금기란 한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 깊게 관습의 형태로 자리 잡은 일종의 권위이며 강제다. 이러한 관습이 인민을 억압하고 부정을 가리는 수단이 될 때, 금기는 도전의 대상이 된다. 수많은 지성과 예술가들이 온몸으로 저항한 금기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착취하는 핑곗거리로 에로티시즘을 사용하는 것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네의 1865년 작 '올랭피아'마네의 <올랭피아>. 1865년, 이작품은 음란하고 상스럽다는 혹평을 받았다. 여신을 표현하는 스테레오타입을 버리고 현실 속의 여성으로 그린 점, 도도하게 관람자를 응시하는 여성의 시선 등이 문제였다. 이렇게 에로티시즘은 섹슈얼리티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을 환기시킴으로써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다.


■ 미투는 피해자 돕는 운동, 성별과는 무관

우리나라에서 미투는 2018년 1월 29일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e-pros)에 성추행 피해를 밝힌 글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이후, <JTBC 뉴스룸>과 가진 서 검사의 인터뷰는 일파만파를 이루었다. 

미투는 2006년에 시민권 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시작한 사회운동이다. 버크가 영국의 텔레그래프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버크 역시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다. 그런 그에게 깊은 회한(悔恨)으로 남은 일이 있었다. 의붓아버지가 자기에게 무슨 짓을 했다며 버크에게 매달렸던 한 소녀에게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단다”(Me too)라고 말하지 못한 것에 지금도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르고, 버크는 “나도”(Me too)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을 돕는 비영리 단체 ‘양성평등을 위한 여성들’(Girls for Gender Equity)을 이끌고 있다.[각주:3]

처음, 미투는 피해자들의 공감대를 만들고 용기를 내도록 연대함으로써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익명의 고백을 통해 조심스럽게 시작됐다. 이윽고 피해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범죄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대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인 미투에 앞서 2016년에 문화예술계에서 성추문 사건이 폭로됐다. 이때 문단을 비롯, 미술과 음악, 평단뿐만 아니라, 대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미투와는 결을 달리했지만, 사실상 이 시기에 이루어진 성추문 폭로는 우리나라 미투의 시발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서지현 검사의 고백과 함께 미투가 본격적으로 촉발되자, 미투의 확산은 ‘일대 혁명’으로 평가되었고 처음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점차 부작용이 논란이 되었고, 심지어 미투의 본질을 묻는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에게 쏟아진 2차 가해가 문제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이들에게는 ‘꽃뱀’ 또는 ‘관종’[각주:4]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과 무고(誣告)를 빌미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함으로써 미투는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미투는 진영논리에 따라 정치적 공세의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일부에서는 미투를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쟁점화 함으로써 미투 본질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또한, 실제 무고로 인해 사회적 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피해까지 발생해 미투 회의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급기야 미투는 ‘펜스 룰’[각주:5] ‘역 펜스 룰’ 등과 같은 논란과 함께 성(性) 대결의 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타라나 버크는 미투가 단지 여성들의 운동만은 아니라며 “모든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운동”이라고 규정했다.[각주:6] 그러니까, 미투는 성 대결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 피해자가 미투를 주도하고 있지만 소년을 포함해 남성 성폭력 피해자 또한 이 운동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버크의 주장이다. 이는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투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아직 전망보다 희망에 가깝겠지만, 일단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피해자 중심주의’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대하는 민중의 태도 또한 미투를 기점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는 다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착취 관계에서 비롯된 이중구조와 홀드업(hold-up), 기회주의와 특혜로 배양된 돈 권력의 ‘갑질’, 창의성을 말살하는 엘리트 중심의 문화·예술 등과 같은 병폐의 심장을 겨냥할 것이다. 그리고 강자나 그들이 지닌 권위의 허상이 드러날 때마다 약자들은 잊고 있던 자신들의 힘을 점차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강자-약자를 나누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무너지고 그 근간부터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미투 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Tarana Burke)와 미투무브먼트 홈페이지미투 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Tarana Burke)와 미투무브먼트 홈페이지


  1. 성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야한 소설 또는 그런 이야기를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다. [본문으로]
  2. 2)‘김기덕 사건’ 피해 여배우 “성폭력 만연해도 일 끊길까봐…”, 한겨레, 2018.2.4 [본문으로]
  3. 3) 'It could all disappear': #MeToo founder Tarana Burke on where the campaign is going wrong, The [본문으로]
  4. ‘관심종자’의 줄임말이다. 관심종자는 인터넷 신조어로 타인의 관심을 추구하며 무리수를 두는 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본문으로]
  5. 펜스룰(Pence Rule)은 마이크 펜스(Mike Pence)의 규칙이라는 의미다. 미국의 현 부통령인 펜스는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결혼생활에서의 자기 몸가짐에 대해 언급하며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투의 확산과 더불어 펜스룰은 애초에 성적 논란의 빌미를 만들지 않는 방어적 대처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6. 1과 동일한 기사 참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