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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_thoughts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5월 23일 토요일, 휴무였지만 일찍 일어났다. 무심코 뉴스를 보고 있는데, 26일 코엑스에 있을 한 행사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조경분야와 관련된 전시행사여서 오래전에 시설물 시공업체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자체 제품을 갖고 싶다며 디자인을 의뢰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은 흐지부지 지나가고 말았다. 제품을 개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장조사에서 부터 시작해 많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어 기회가 되면 그쪽 업계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전화를 했다. 그런 전시가 있는데 한 번 보러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전에 다른 행사에 갔었고, 지금은 시공현장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이런 저런 안부를 물으며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그 친구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을 무렵, 집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어디 갔다 왔어? 빨리 들어와 봐, 큰일 났어"

 

'혹시, 애들이 아픈 건가?' 집사람이 다급하게 말을 걸어오면 항상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좀 전까지 잘 놀던 애들이 왜...'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집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음독 했대"

"뭐? 음독? 그럼 자살한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고, 위독하대"

 

얼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이가 자살을 시도하다니. 곰곰이 생각해봐도 역사상 그런 사건은 없었다. 저격을 당했으면 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통령은 없었다. 속보를 보기 위해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렸지만, 아직 속보를 내보내는 곳은 없었다. 집사람이 본 게 오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SBS에서 내보내는 속보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 뒤편 절벽에서 투신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담겨있었지만, 아직은 확인된 것이 없다는 설명도 있었다. 함께 산에 올랐던 경호원이 급히 병원으로 옮겼고, 지금은 아주 위독한 상황이라고 했다. 한 동안 새로운 소식이 없이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우리 가족은 그날 아침 변산반도에 있는 처가에 갈 계획이었다. 집사람의 공부를 위해 아이들을 잠시 시골에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엄마 주변을 서성이며 칭얼대고 있었다. 집사람은 TV에 귀를 기울이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집사람은 밥을 한 술 뜨더니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불안한 마음에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때로는 인터넷이 더 빠른 정보를 전달해주기도 하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면서 계속 TV를 주시했다. 한 기자가 사건을 '자살'로 단정하는 듯 한 발언을 하자, 앵커가 아직은 밝혀진 것이 없다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정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당황스럽기는 저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리고 잠시 후,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전하는 격앙된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숙아,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

"뭐? 어떻게..."

 

집사람은 어떻게 이럴 수 이느냐는 말을 하려다 감정이 복받쳐 말꼬리를 흐렸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시선은 TV에 가 있었고, 작은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다는 보도가 전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집사람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계속 하던 일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서가 발견됐다는 소식과 함께 사건은 '자살'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사망'이라는 표현 대신 '서거'로 표현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집사람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인터넷에 올라온 새로운 정보를 읽어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다시 수저를 들었다.

 

"밥 안 먹어?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지금, 이 상황에 밥이 넘어 가냐?"

 

무덤덤한 나의 태도에 서운했는지 집사람은 마음대로 하라고 한 후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밥을 먹었다. 채널을 돌려보니 모든 채널에서 같은 내용의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이제 모두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챙겨 싱크대에 넣고 수돗물을 틀었다. 식사 후 설거지가 잘 되게 하기 위해 항상 그릇을 물에 담가 두곤 했다. 그렇게 나는 텅 빈 머리로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집사람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예삿일은 아니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 가려면 아이들 씻기고 옷도 입히고 짐도 꾸려야 하는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으려는 것일까. 나라도 서둘러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먼저 씻은 다음 아이들을 한 명씩 씻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평소처럼 문을 닫고, 평소처럼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쏴'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것 같더니 코끝에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참아보려 했다. 애써 냉정을 차려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목 놓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그럴 수 없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면대를 부여잡고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성인이 된 후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우는 것일까.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다. 더구나 난 열린 우리당이나 참여정부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기도 했다. 이렇게 눈물이 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충격이 컸구나. 그래,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그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마감했으니 놀랄 수밖에. 정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뜨거운 것은 '슬픔'이었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나는 슬펐던 것이다.

 

정치에 냉담했던 나지만,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봉하마을에 갈 계획이었다. 어쩌면 올 여름에 그 계획을 실행했을 수도 있다. 봉하마을에 가면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우리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었다. 무슨 게이트로 연일 안 좋은 뉴스를 접하면서 모든 상황이 빨리 잦아들기를 원했다. 이러다가 올해도 봉하마을에 못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자로서 그 분을 인터뷰해보고 싶었다. 나는 w.e.b.지 편집장이고, 그 분은 인터넷 대통령이지 않은가. 꼭 한 번은 만나서 인터넷 정치에 대한 그 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