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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_ongoing/◎암연: 어떤 성폭력 사건

暗然: [2편] 애초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틀 뒤 3월 29일, 사건전문 기자는 남자의 아내[각주:1]에게 전화해 그날(3월 27일)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인지 당혹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살짝 떨리는 듯했다. 남자의 아내에게 그 소식은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다. 가족의 애를 태웠던 아들의 사건도 다시 방송을 타며 사회적 관심이 일기 시작하던 터였다.


여자의 소셜미디어에도 날벼락의 징후는 없었다. 여자는 3월 29일 오전 10시 무렵 페이스북에 방송 이벤트 마감과 함께 참가자들에게 책을 발송하겠다고 공지했다. 글의 말미에는 “앞으로도 계속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는 코멘트도 남겼다. 그러고 얼마 후, 기자는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클릭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페이스북에는 졸피뎀이라는 수면유도제에 대해 설명한 글도 올라왔다. 졸피뎀이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다.


남자의 아내는 기자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당시, 남자와 그의 아내는 그들과 함께 범죄 피해자를 돕는 단체를 만들기까지 했었다. 기자는 이 단체의 대표를, 여자는 부대표를 각각 맡았고 남자와 아내는 이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려 했다. 그런데 성폭력이라니, 그것도 남편이, 부대표를 상대로. 


전화 통화 후, 남자의 아내와 기자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갔다. 메신저 대화에서도 남자의 아내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 할지, 과연 수습을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 것인지.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지 누나라고 불렀던 입장에서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어찌해야 하는지요?”

“대표님과 그 사람, 저하고 만나 말씀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여자의) 몸상태 마음상태 어찌 일시간 치유되겠습니까만, 조금 안정되고 나면 방법을 찾아보아요. 저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많이 힘듭니다. 대표님, 염치 없지만 저를 조금만 헤아려 주십시요.”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성폭력을 주장하는 기자의 행동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전말은 주로 기자가 쓴 글을 통해 알려졌지만 이렇다 할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다. 사건전문 기자는 왜, 성폭력을 주장하면서 남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 알렸을까? 남자에 대한 배려였을까? 하지만 사건을 알린 이가 기자, 그것도 사건전문 기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건의 당사자에게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로의 주장이 엇갈린다면 증거를 확보해 진위를 가린 다음,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고, 연후에 주변에 사실을 알려 대책을 세우거나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기자는 남자의 아내에게 전화해 성폭력이 기정사실인 양 주장했다. 그녀는 당일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기자는 여자의 주장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려는 어떠한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여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일방적으로 남자를 가해자로 몰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또 있다. 기자는 그 과정에서 사건의 당사자인 남자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차단했다. 


또, 기자는 남자의 아내와 통화하면서 성폭력이 발생한 차량에 블랙박스가 있는지 여러 차례 물으며 확인했다고 한다. 이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후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은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 그는 이 사건을 목격했을 대리기사 두 명, 모텔 관계자, 모텔과 도로에 설치된 CCTV 등,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자는 카카오톡 메신저에서의 대화가 유출될 것을 우려하며 텔레그램을 설치해 연락할 것을 남자의 아내에게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의도를 짐작해  보기 위해 잠시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기자의 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피고측 변호인 “증인은 피고인, 고소인으로부터 헤어진 이후 기차에 탑승하였고 고소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요?”

사건전문 기자 “예, 그렇습니다.” 

피고측 변호인 “몇 시경 연락을 받았습니까?”

사건전문 기자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한 광명쯤 제가 가던 중에, 처음에는 전화가 온 게 아니라 텔레그램으로 왔습니다. 자기가 형부(남자)한테 차 안에서 당하고 또 모텔로, 그래서 제 가 너무 놀라서 바로 전화해서 지금 KTX 안인데 내가 서울역에 도착하면 전화하겠다 해서 서울 역에 내려서 제가 전화해서 통화를 한 겁니다.” 

피고측 변호인 “증인은 그때 당시 받은 메시지 보관하고 있나요?”

사건전문 기자 “텔레그램은 금방 금방 없어지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보관하고 있지 않습니다.” (2016고합268 사건의 증인신문 녹취서 중에서) 


사실, 텔레그램에 있는 메시지는 사용자가 대화방을 없애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알려진 바로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의 사용자 로그(log)는 서버에 그대로 남는다. 한때 이 데이터가 합법적인 절차 없이 수사기관에 제공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후, 이러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 텔레그렘이라는 메신저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사, 대화 내용이 금방 사라진다 하더라도 기록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그 내용을 캡쳐해 보관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기자의 발언은 금방 없어지기 때문에 보관할 수 없었던 것인지, 보관할 필요가 없어 굳이 보관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매우 모호하기까지 하다.


여자의 행동도 예사롭지는 않았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예정된 대로 책을 발송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졸피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이틀 전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이런 여력이 있을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성폭력 피해자(사실상 모든 폭력의 결과가 이와 같을 것이다)들은 깊은 무력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만약, 성폭력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면 말로 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까지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성폭력 피해자의 이러한 모습이 통상적이라고 해서 모두 그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의식했을까, 기자와 여자는 남자의 아들 사건에 대해 깊은 애착을 과시했다.


“자신에게 치욕을 안긴 가해자 가족을 위해 ‘이럴 필요가 있을까’하며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부대표는 달랐습니다. 부대표는 가해자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기기 위해 ‘사건 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부대표가 이를 악물고 이벤트 참여자들에게 책을 발송한 것은 ‘내가 맡은 것은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었다”는 것이었고, 또 아버지인 가해자와 아들의 사건을 분리하려 했던 것입니다.”(사건전문 기자가 쓴 ‘그날의 진실’ 중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먹히지 않자 기자와 여자가 벌인 짓은 저 주장과 대치한다. 뿐만 아니라, 아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던 그들의 의도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남자의 아들은 축구선수다. 그러나 승부조작 압박을 받던 중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이 사건을 종결했지만, 남자와 그의 가족은 지금도 타살을 주장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각주:2] 남자의 아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경찰조사의 허점을 밝히고 여러 의혹을 종합해 책[각주:3]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탐사보도 프로그램 <추적60분>이 남자의 아들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성폭력 사건은 바로 이 무렵에 불거진 것이다. 기자는 약 한 달 보름 동안 메신저를 통해 “진정어린” 사과를 요구하며 남자와 그의 아내를 압박했다. 그러나 남자의 아내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과를 유보했다. 또한, 범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응당한 처벌도 받겠다며 완고하게 입장을 바꿨다. 즉, 남자의 아내는 기자의 주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고소했다. 이후, 기자는 고소장을 근거로 남자를 파렴치한 범죄자로 모는 십여 편의 연재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이 뿐만 아니라, 남자의 딸의 결혼식을 겨냥한 듯, 이 시점에 성폭력 사건을 알리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검찰의 기소가 있을 즈음, 기자는 한 음성파일을 공개하겠다고 공표했다. 그것은 남자의 아들이 선수로 있던 구단 동료의 음성이 담긴 파일이었다. 이 파일에서 구단 동료는 남자의 아들도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각주:4] 사건전문 기자는 이 파일을 언론과 경찰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구단 동료의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남자의 아들은 고인이 되었고, 따라서 공소권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그 기자는 몰랐을까?


적으로, 기자와 여자는 이미 고인이 된 남자의 아들마저 끌어들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한 셈이다. 과연 이들은 남자의 아들 사건에 뛰어들면서 어떤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아니, 저들은 ‘진실’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기는 했을까? 성폭력에 대응하는 사건전문 기자의 방식은 또 어떤가? 과연 진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그에게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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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목록


[1편] 사건속으로

https://kangcd.tistory.com/50


[3편] 아무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https://kangcd.tistory.com/57


[4편] 덮으려는 자, 밝히려는 자

https://kangcd.tistory.com/58


[5편] 그날의 '진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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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앞뒤가 맞지 않는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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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억지스러운 ‘그날의 진실’

https://kangcd.tistory.com/65


암연_Data_01 : 사건전문 기자의 연재 10편

https://kangcd.tistory.com/60


암연_Data_02 : 시민동맹군과 여자의 분란

https://kangcd.tistory.com/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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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연재에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네 명이다.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는 ‘남자’와 ‘여자’다. 그리고 제삼자이지만 이 사건의 처리를 놓고 대부분의 대화를 나눈 사람은 ‘남자의 아내’와 ‘사건전문 기자’다. [본문으로]
  2. 설사 남자의 아들의 죽음을 자살로 보더라도, 그 청년이 부정한 요구에 저항했다는 점, 그리고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에 깊게 절망했던 것은 자명해 보인다.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더라도, 청년의 죽음은 타살의 범주에서 그 원인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은 가족과 스포츠계의 이러한 노력에 찬 물을 끼얹은 사건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으로]
  3.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키퍼』옥정화, 책과나무, 2014.12.11 [본문으로]
  4. <추적60분> 제작팀은 남자의 아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는지 여부를 조사했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전문 기자 역시 이 부분을 모르지 않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