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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_ongoing/◎암연: 어떤 성폭력 사건

暗然: [3편] 아무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2018년 2월 7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부도 원심의 판결을 인용, 남자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그러자 그해 3월 1일, 사건전문 기자는 시민동맹군 운영위의 명의로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는 법원이 판결문에 남자가 "성폭력을 시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 무죄 판결이 온전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는 재판의 쟁점을 흐리는 주장에 불과하다. 당연하게도, 재판의 쟁점은 성폭력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무죄란 검경이 남자의 성폭력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남자가 성폭력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명백하게 증명되지 못했다. 재판부가 성폭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제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법원으로서는 무엇보다 '귀신 논증'의 오류를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귀신 논증은 흔히 '무지에 호소하는 논증'이라고도 한다. 이는 "귀신의 존재를 증명한 적이 없으므로 귀신은 없는 게 분명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귀신의 존재가 밝혀질 여지는 무한한 시간만큼이나 열려 있으므로, 지금까지 논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역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처럼 법원이 성폭력 시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폭력 시도가 없었다는 사실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만약,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는 여자가 무고誣告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가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여자와 사건전문 기자를 고소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자신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명백한 무고無辜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1심 재판부가 2017년 8월 17일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행동을 하였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수사기관은 수사 초기에 2명의 대리운전 기사와 모텔 종업원 등 중요한 참고인에 대한 조사를 하지도 않았고, 피고인과 피해자에 대한 대질조사를 실시하지도 않는 등 이 사건 공소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말하자면, 검경이 혐의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남자를 기소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고 주장한 게 2016년 3월 27일이었다.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꼬박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2년 동안 성폭력 가해자로 몰린 남자와 그의 아내 등 가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 사이에 남자의 맏딸은 결혼을 했고, 손주도 태어났다. 남자의 아내는 첫 번째 무죄 판결 이후 "비로소 손녀가 눈에 들어왔다"라고 했다. 이 사건은 이 가족이 당연히 누렸어야 할 일상의 기쁨을 앗아갔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게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 또한 이러한 맥락 위에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성범죄는 그 혐의만으로도 피고인에게 큰 고통과 명예훼손을 야기한다. 피고의 가족이 겪는 고초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범죄 여부를 가리는 공권력이란 매우 엄중한 것이다.  


미제未濟이거나 난항에 처한 사건을 설명하는 기사에 뻔하게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부실한 초동 수사.' 


성폭력이나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인간 관계의 맥락 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대개 물증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진위를 판가름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도, 성폭력을 공론화한 사건전문 기자의 기사도 모두 오락가락했다. 더구나 경찰과 검찰이 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물증까지 확보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성폭력 가해자로 내몰렸던 남자와 남자의 가족이 이렇게까지 큰 고통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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