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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 STORY

브랜딩, 기업의 활동에 영혼을 싣는 일

격월간 무크지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발견한 ‘온브랜딩(On-Branding)’이라는 개념은 참 멋진 것이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기업 담당자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반면, 브랜딩은 마니아들에 의해 수시로 끊임없이 생성된다. 바로 이러한 브랜딩을 두고 ‘온브랜딩’이라고 한다. 물론, ‘on’은 온라인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모호한 온라인이야 말로 브랜딩이라는 패러다임을 여는 기름진 토양이 아닐 수 없다.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브랜딩은 프로모션을 위해 단기적으로 시행하는 이벤트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캠페인은 긴 시간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그 사회 구성원의 무의식 깊은 곳에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브랜드(Brand)는 어떤 상품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이름이나 기호, 도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브랜드는 ‘상표(trademark, servicemark)’를 의미한다. 브랜드는 주로 시각적으로 표시되는데 숫자와 글자, 서체, 독특한 도안으로 이루어진 로고가 조합된 형식이다. 특히, 색상은 매우 직관적으로 브랜드를 인식하게 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브랜드 인지를 위해 시각 이외에 다양한 감각 체험이 시도되고 있다. 

 

브랜드는 상표라는 뜻 이전에 소인이나 낙인을 찍는 것을 의미했다. 소를 방목하며 키우다 보면 다른 목장의 소와 섞일 가능성이 있고 이는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소에 표시를 해야 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장을 의미하는 문양이나 글자를 인두로 만들어 소의 가죽을 지져서 표시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브랜드의 고유한 기능은 ‘구별’이다. 그런데 브랜드, 다시 말해 소인은 구별 기능에서 더 나아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이때부터 브랜드를 표시하는 특정한 문양은 구별의 기능에 ‘차별성’을 나타내는 역할이 추가된다. 어떻게 소인 하나로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것은 일관되고 반복적인 경험에 의해 가능하다.

 

 

브랜드, 구별에서 차별성을 위한 것으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기호학 이론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기호라는 것은 산수나 수학을 풀기 위해 사용하는 ‘부호’를 비롯해, 교통표지판, 문자,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영상이미지, 점심시간에 마신 커피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쉬르라(Saussure, Ferdinand De)는 언어학자는 이런 기호가 기표(記表:significant)와 기의(記意:signifié)로 구성돼 있다고 보았다. 기표는 의미를 담는 그릇을 의미하며, 의미는 이 기표에 의해서 전달된다. 기의란 바로 기표에 담긴 의미를 말한다. 사과를 예로 들자면, ‘사과’라는 글자는 기표에 해당하고, 이 글자를 읽고 머리에 표상되는 새콤한 맛의 붉은색 열매는 기의에 해당한다.

 

 

그런데 기표와 기의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다시 사과를 예로 들면, 누군가 ‘사과’라고 쓴 것을 어떤 이는 과일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떠올릴 수도 있다. 또, 어떤 남성이 빨간 장미꽃을 어떤 여성의 책상에 슬며시 올려놓는 장면을 연상해 보자. 이때 ‘빨간 장미’는 하나의 기표이다. 남성은 이 기표를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은 장미를 받아들며 얼굴을 붉히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기표에 담긴 의미가 잘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표를 통해 전달자와 수신자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공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항상 동일한 의미공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다 새벽에 ‘쿵’하는 소리를 듣고 깨었을 때, 그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게 된다. ‘도둑이 들었나? 아니, 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오다 넘어진 소리일까? 어쩌면 조간신문이 배달되는 소리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하나의 기표에 필연적으로 동일한 기의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캉(Jacques Lacan)이라는 철학자는 “기의란 언제나 제시된 기표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미끄럼을 타는 그런 것”이라고 했다. (참고 :  김경용, 민음사, 1998.3)

 

 

그렇다면 어떻게 기의와 기표가 순조롭게 연결되어 의미공유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호학에서는 기호의 조직원리를 코드(Code)라고 부른다. 코드는 기표와 기의를 연결하는 사회적 관습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비둘기’는 우리에게 평화를 상징한다. 이것은 매우 자의적인 연결이지만 오랜 시간 이러한 연결이 관습이 되어 그렇게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관습이 있는 외계인이 있다고 치자. 그들은 평화의 의미로 건네는 비둘기를 보고 ‘도발’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자를 처음 배우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ㄱ’이라는 글자의 명칭이 ‘기역’이라고 배우고 ‘가, 갸, 고, 교’와 같은 쓰임새를 배운다. 그리고 그 속에서 ‘ㄱ’이 일관되게 특정한 발음을 표시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읽고 쓰는 과정에서 그 용법을 더욱 확실하게 체득하게 된다. 물론, 이런 코드화 과정이 없었던 외국인에게 ‘ㄱ’은 한 번 꺾인 선에 불과할 것이다.

 

 

브랜드, 가치를 담다

 

다시 브랜드로 돌아와서, 브랜드는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기 위한 기호이다. 이 목장의 이름이 ‘OK목장’이니까, 이곳에 있는 소에는 모두 ‘OK’라는 낙인을 찍어 다른 소와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분을 위해 사용했던 낙인에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OK목장의 주인들은 매우 성실한 사람들이다. 때마다 싱싱한 풀들이 자라는 초원을 찾아다니며 소에게 꼴을 먹인다. 소들은 드넓은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니 항상 건강했다. 그래서 OK목장에서 생산되는 소가죽이나 고기, 우유는 다른 목장에 비해 품질이 매우 좋았다. 

 

사람들은 앞 다퉈 OK목장의 생산품을 구입하려 했고 심지어는 웃돈을 얹어주고 사가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결국 OK목장의 제품은 경쟁제품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품질이 뛰어난 제품으로 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OK목장’이라는 낙인은 ‘구별’의 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우수한 품질’이라는 가치를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머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 ‘OK목장’이라는 상표는 고급 취향을 과시하는 것이 되어갈 것이다.

 

 

여기까지 어원과 기호학을 통해 브랜드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현대에서 브랜드 또는 브랜딩은 매우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기호와 기의를 조직하는 원리인 코드가 일종의 관습이라는 점에서, 특정 상표와 그 상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브랜드는 마케팅의 연장선상에서 기업이 벌이는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인위적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부여되기도 하지만, 위의 OK목장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브랜딩은 진심어린 실천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신기루처럼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브랜드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 아이덴티티

 

브랜드를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를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라고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타깃 소비자의 마음속에 기업이 자사의 브랜드에 대해 궁극적으로 심어주고 싶은 연상들의 결합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시각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공감각적인 경험이고, 그 경험에 대한 소비자의 감성 등을 아우르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 A라는 회사의 자동차에 대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생각해보자. A사의 자동차는 보닛 앞부분에 독특한 엠블럼이 달려 있어 어디를 가나 쉽게 눈에 띈다. 휠 중앙에도 엠블럼과 동일한 로고가 디자인돼 있고, 후면에는 A사 고유의 서체로 로고타이프가 새겨져 있다. A사의 자동차 디자인은 모던한 스타일로, 심플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이 인상에 남는다.

 

시각적인 특징 외에 A사의 자동차는 잔고장이 없고 연비가 좋기로 정평이 났다. 비교적 저렴한 찻값 때문에 특히, 수입이 많지 않은 젊은 회사원에게 인기가 높다. 타사의 차를 구입한 운전자들과는 달리 A사의 차를 타는 사람은 쉽게 차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길거리에는 오래된 A사의 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A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오래된 차종도 수리를 받는 게 어렵지 않다. A사가 내세우고 있는 브랜드 슬로건이 ‘오래된 내 친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한편, A사의 자동차 마니아들은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기도 하다. A사는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차이지만 굳이 해외에 현지공장을 설립하지 않고 국내 B지역을 생산기점으로 고집해왔다. 그렇다 보니, B지역의 경제에 있어서 A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A사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고 한다. A사는 ‘오래된 내 친구’라는 슬로건에 따라다양한 캠페인을 해왔고, 지역사회에서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거나 유적을 관리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심지어 A사의 자동차가 보편적이지 않은 작동 방식을 취하고 있어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A사의 마니아들은 이를 애써 감수하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A사의 마니아들에게 다른 차들이 오히려 불편한 조작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여겨질 것이다. 

 

 

물론, A사는 가상의 회사다. 이 경우처럼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시각적 요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품의 품질, 주요 소비계층, 유지보수,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통해 두루두루 아이덴티티가 형성된다. 이렇게 일관되고 강한 아이덴티티가 형성되기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쉽지 않은 일인 만큼, 브랜드 관리는 진정성에 바탕을 둔 열정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쌓아올린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도요타자동차는 2007년에 가속페달 결함에 대해 불만이 접수되고 있었지만 이를 슬쩍 덮으려고 하다 2010년에 사상 최대 규모인 380만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다. 리콜 사태는 미국을 넘어 캐나다와 유럽지역까지 퍼져나갔다. 결국, 북미지역에서만 800만대를 리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너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애플의 로고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될 때 제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애플은 혁신의 대명사였고,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애플은 세계의 시선과 기대를 받았다. 마케팅이 판매 촉진을 위한 것이라면, 브랜딩은 '참된 그것'이 되는 것이다.

브랜드는 소비자와 함께 만드는 것

 

브랜드는 꾸준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브랜딩(Branding)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브랜드에 어떠한 연상을 유도할 것인가를 관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브랜드가 총체적인 경험으로 어떠한 심상을 형성하듯이 브랜딩 역시 전사적이고 총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어떠한 철학을 갖고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 : Inter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s)과는 다른 면이 있다. IMC는 다양한 고객접점에서 이루어지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주체가 여럿일 경우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통일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브랜드에 하나의 연상을 심는다는 점에서 IMC는 브랜딩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브랜딩은 이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판촉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의 메시지라면, 브랜딩은 이를 포함해 제품(혹은 서비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소비자의 모든 경험을 포괄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마케팅이 소비자를 수동적 존재로 보는 전략이라면, 브랜딩은 소비자를 적극적인 존재로 보고 펼치는 관리라 할 수 있다. 

 

브랜딩을 통해 어떤 상품은 소비자에게 자부심이 되거나 청춘의 발랄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브랜딩은 소비자를 환경보호와 인권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존재로 자각시키는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마케팅은 가고 활짝 열린 브랜딩의 시대

 

[유니타스브랜드]의 권민 편집장은 현재를 브랜딩의 시대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인터넷이 바꾼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이다. 인터넷이 가진 쌍방향 소통은 단선적인 올드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소통하는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레스키트(Press kit)나 퍼블리시티릴리즈(Publicity Release), 엠바고(Embargo) 등과 같은 단어는 기업이 실시해온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드러낸다. 프레스키트에는 기자들이 참고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방출(Release)되고, 기업은 보도시점(Embargo)을 정하며 언론을 통제한다. 하지만, 언론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소비자들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일인미디어와 같은 적극적인 생산자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 실시간으로 정보가 확산되고 있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커뮤니케이션은 변화를 요구받는다.

 

올드미디어에서 소비대중은 일방적으로 광고를 시청하거나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해석하고 비평하면서 시장 권력을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일컬어 프로슈머라고 하는데, 이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말로 ‘생산적 소비자’를 의미한다. 

 

프로슈머가 된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품을 기획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비윤리적인 기업의 제품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개진하거나 ‘공정무역’ 등과 같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이런 소비주체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은 인터넷을 근거지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업에 대응한다.

 

기존의 관행에 젖어 있는 기업에게 프로슈머의 존재는 성가시거나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자신들의 철학을 구현해온 기업이라면 드디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영혼이 없는 기업은 생존이 어렵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진짜’가 되어야 한다. 진짜 철학을 구현하는 기업은 자발적인 많은 추종자들에 의해서 더욱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5년 전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