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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PTICAL activity

[음모론]2012 영국 올림픽과 테러 예보(II)

런던이 테러의 대상이 된다, 그것도 2012년 올림픽 경기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얼마든지 스릴러와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국제행사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테러범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더구나 이미 끔찍한 테러를 경험한 곳이라면 더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에 대한 우려가 대중매체에 자주 비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대테러 훈련까지도 실제 테러상황과 닮았다는 이유로 예보프로그램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모든 훈련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시나리오로 상정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훈련 시나리오와 실제 상황이 흡사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테러의 트라우마와 런던 올림픽

 

런던 올림픽 테러에 대한 우려는 과거에 실재했던 테러에 대한 공포로부터 기인하는 바가 더 컸다. 각종 매체와 TV드라마, 영화에 런던올림픽 테러가 등장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공포와 우려가 영국사회에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음모론은 그러한 공포와 우려에 편승해 불안을 증폭시켰을 뿐, 현실에 대한 음모론의 편집증적인 해석은 얼마든지 상식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영국을 테러의 공포로부터 떨게 했던 트라우마는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7월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 117차 IOC총회에서 영국 런던은 제30회 올림픽의 개최지로 결정됐다. 이로써 런던은 1908년과 1948년에 이어 근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세 번의 올림픽을 치르는 도시가 되었다. 올림픽 개최지로 런던이 선정된 그날,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는 서방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런던의 들뜬 분위기도 잠시, 다음날 7월7일 런던 도심에서 연쇄폭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영국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출근길, 대중교통수단을 대상으로 한 폭탄 테러는 사망자 56명을 포함해 7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2001년 미국 뉴욕에 발생한 9·11테러(September 11 attacks)가 미국의 심장부를 향한 것이었다면 런던의 7·7테러는 그때까지 유럽의 중심을 강타한 가장 큰 규모의 사건이었다.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CCTV 카메라가 설치된 곳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도시다. 또한, 영국은 정보력과 치안에 있어서도 세계 최상의 수준으로 꼽히는 나라다. 세계에서 둘도 없이 안전할 것만 같던 영국의 도심에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테러 용의자를 수사하는 가운데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이 밝혀졌다. 테러에 가담한 네 명의 용의자는 모두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었기 때문이다.[각주:1]

 

2005년 9월 1일 공개된 알카에다 2인자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의 육성 녹화영상이 공개되면서 알카에다 지도부의 테러 가담설은 유력시 되었다. 영상에는 테러범 칸의 육성도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을 군인이라고 밝히고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당신들은 우리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며 영국의 이라크전 참가를 비난했다. 또, 같은 영상에서 알자와히리는 이라크 침공이 "우리의 석유와 자원을 약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무슬림에 대한 침략을 지속한다면 훨씬 더 끔찍한 참사를 당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평범한 시민에 의한 '자생적 테러'가 발생하자 영국은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심지어 영국은 '인권탄압'이라는 비난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종적 혐오 금지법'과 '종교적 혐오 금지법'을 통해 인종과 문화적 차별이 없는 다문화 포용정책을 펼쳐오던 영국에게 7·7테러는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영국 내 인종과 종교적 분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테러 발생 후 영국은 인종갈등과 더불어 여자와 어린이도 자살테러범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The 7 July Memorial in Hyde Park. wikipedia
The 7 July Memorial in Hyde Park. wikipedia

 

 

이후에도 영국에 대한 테러 위협은 수차례 이어졌다. 그러자 올림픽 개최 준비에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내 이주민들도 문제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북아일랜드의 구교세력도 문제였다. 수시로 테러경계 수준이 격상되었고 잠재적 테러 용의자에 대한 검거와 구금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가 코앞에 닥친 2012년 7월, 영국 국방부는 올림픽공원 일대에 대공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영국 올림픽 조직위는 대회 보안을 위해 5억 파운드(한화 약 9천40억원)를 투입하고 4만 여명의 인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미국 FBI요원 1천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테러에 대한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음로론과 예언이 맞물려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러설이 확산되었다.

 

더구나 그 즈음 발생한 테러로 영국 사회의 불길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7월 18일 불가리아의 부르가스 공항터미널 인근 주차장에서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탑승한 버스에 대한 폭탄 테러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과의 관련자가 런던으로 향한다는 첩보가 나돌며 영국과 이스라엘이 바짝 긴장하는 일이 있었다. 2012년은 '뮌헨학살'이 있은지 40주년이 되는 해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떨치기 어려운 악몽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음모세력, 잡을 수 없는 실체일까?

 

2012 런던 올림픽 테러는 각종 음모론과 맞물려 이미 계획된 것이며 큰 참사가 벌어질 것이란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됐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정부의 9·11테러 자작극설 또는, 배후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음모론자들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음모세력이 그들의 목적을 위해 테러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자원탈취를 위해 전쟁의 명분을 세우거나, 시민들의 통제를 강화하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테러가 조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음모세력들은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신세계질서(NWO: New World Order)를 수립하고 세계지배를 위한 야욕을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흑막세력(주로 프리메이슨 또는 일루미나티가 거론됨)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음모를 통해 실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어쩌면 음모론자의 주장처럼 전쟁과 테러, 자연재해 등이 그들에 의해 계획된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음모세력의 대응능력은 매우 민첩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흑막 뒤의 실체에 대한 윤곽을 잡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위장해 유유히 빠져나간다. 음모론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면서 음모론의 한계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음모의 실체는 확인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음모론은 ‘선택편향’ 또는 ‘확증 편향’의 문제를 갖고 있다. 즉, 이미 음모론을 믿고 있는 상황이라면 반증 가능성은 배제되고 확증될 만한 근거만을 모아 주장에 꿰맞추는 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과연 일루미나티 카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재난에는 배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또, 여러 영화와 대중매체에서 WTC 쌍둥이 빌딩을 닮은 건물이 공격당하는 장면 역시 이러한 음모를 암시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를 증명할 명백한 근거가 없다. 

 

WTC나 미 펜타곤이 공격 받는 장면이 자주 소재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이들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파괴된 문명을 영상에 담기 위해 모든 것을 열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대신, 상징성이 있는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WTC는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으로서의 미국을, 펜타곤은 그런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자유의 여신상은 근현대의 자유주의적 문명을 상징한다.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효과적인 이벤트를 만들어야 하는 테러범 역시 상징성이 크고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대상을 공격 타깃으로 설정할 것이다. 

 

음모론에서 음모세력은 오랜 세월동안 동일한 주체로서 지목돼 왔다. 대표적으로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결사체는 가장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단체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이후부터 유럽사회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비밀 커뮤니티이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다양한 분파로 나뉘어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질서를 발전시켜왔다. 프리메이슨의 한 지파로 알려져 있는 일루미나티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근세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조직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수백 년 동안 세계지배의 야욕을 꿈꾸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세계를 지배하는 음모세력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미 수많은 흑막정치가 세계사에 점철된 이상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나 기업과 같은 공동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의 의제와 그에 따른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하나의 공동체가 수백 년에 걸쳐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주체에 의해 많은 음모가 전략으로 차용돼 온 것은 사실이나, 시대와 욕망이 공명하며 좌충우돌하는 세계사에서 영원한 존재는 없었다. 심지어 종교조차도 변형과 변형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음모론은 종교적 신념의 현대적 변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마스코트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마스코트.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러에 대한 예보는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경기 개최 이후 또 다른 음모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외눈을 한 기괴한 마스코트는 전시안을, 주경기장을 비추는 조명탑은 일루미나티 피라미드를, 행사 로고타입은 시온(zion)이라는 글자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개회식과 폐회식 이벤트가 오컬트와 사탄 숭배 의식을 위해 연출된 것이란 주장도 있다.

 

※ 관련 이야기: 2012 영국 올림픽과 테러 예보(I)

http://kangcd.tistory.com/31

 

  1. 테러범 넷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칸(Mohammad Sidique Khan, 30)은 리즈(Leeds)에 아내와 14개월짜리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고, 초등학교에서 이민 자녀와 장애아를 돕는 보조교사(Learning mentor)였다. 탄위어(Shehzad Tanweer, 22)는 리즈에서 부모와 함께 살면서 가게 점원으로 일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의 부모는 벤츠를 몰 정도로 성공적인 이민 가정이었다고 한다. 린지(Germaine Lindsay, 19)는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서 아내와 아들과 살고 있었다. 범행 당시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후세인(Hasib Hussain, 18)은 리즈에서 형 내외와 함께 살았다. 자메이카 출신인 린지를 빼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파키스탄계 영국인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