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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_thoughts

당신의 이야기가 특별해집니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er)라는 형식의 연극을 하는 그룹이다. 그들의 연극에는 극본이나 화려한 무대 같은 것은 없다. 객석과 무대라는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관객과 호응하는 모습은 마당놀이를 닮았지만, 관객의 이야기가 연극의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감동을 준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극단 <목요일오후한시>



관객이 작가이자 주인공


<목요일오후한시>라는 극단명의 유래는 창단 멤버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마다 퍼포먼스를 하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공연하는 플레이백 씨어터는 네댓 명의 배우들이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모티브로 그 자리에서 바로 즉흥적인 연기를 펼치는 연극을 말한다. 이런 형식의 연극은 30여 년 전 미국 뉴욕에서 조나단 폭스(Jonathan Fox)라는 사람에 의해서 시작됐고 지금은 전세계에 수백 개의 극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공연을 하기 위한 장소에 대해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 것 같다. 학교 교실이든, 카페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기자가 이들을 처음 만난 곳 역시 공원이었다. 한 낮의 햇빛이 내리쬐던 공원 한 가운데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연극을 위한 무대장치는 관객의 몰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공연에서도 그것 못지 않은 몰입이 일어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주변의 이야기가 그대로 극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플레이백 씨어터의 작가이자 주인공은 관객이다. 


플레이백 씨어터는 즉흥환상곡


극본이 없이 연극을 한다는 것은 얼핏 불가능해 보인다. 최소한 배우들과 악사가 공연하기 위한 나름의 패턴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잠정적으로 미리 약속된 무엇이 있지 않을까. 기자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충동이 생기는 대로 무대로 나가요. 동시에 몇 명의 배우가 나가기도 하고, 알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엄마 역할이 필요한데, 두 배우가 엄마역할을 염두하고 무대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거죠. 그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엄마역할을 포기하고 아이로 변신해야 돼요(웃음).”


때로는 배우들 사이에 관객이 들려준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 그대로 공연에서 노출되기도 한다. 그럼, 공연을 망치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공연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구성원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다양한 변수를 극 속으로 포용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순발력을 위해 뭔가 특별한 훈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관객이 어떤 얘기를 할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평소 이야기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것을 ‘대안과 수용’이라고 하는데, 한 배우가 소리든 움직임이든, 아니면 대사든 하나를 제안하면 바로 수용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죠. 또는 ‘움직이는 조각상’이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배우들이 각자 이야기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움직임을 만들면, 그 배우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배우들이 붙어서 전체 그림을 만들어주는 연습을 하죠. 무엇보다도 배우가 주변환경을 차단하지 않고 수용해서 진행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도 많이 하고 있고요. 어떤 이야기에 대한 입장이나 해석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 나가는 거죠.”


단순한 재현을 넘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굳이 연극으로 재현하는 것은 왜일까?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부분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머물게 하지 않고 새롭게 재창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저는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예를 들어, 버스에서 발을 밟혔는데 사과도 못 받고 불쾌했었던 이야기처럼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이게 연극으로 만들어지면서 아주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가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리고 뭔가 소중한 것 같았고요. 이런 점은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이야기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연극이 단순한 재현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재현을 통해 객관화시키는 것도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 사람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연극으로 재현되면서 누군가의 경험이 이야기나 말, 혹은 문자에 머물지 않고 입체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텔러(teller)로 참여하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 이야기가 또 다르게 보이는 거에요. 화가 나고 어떤 감정이 쌓여있던 것도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그 속에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거죠.”


협업을 위한 덕목은 ‘센 기(氣)’


정해진 방식이 없이 모든 구성원이 즉흥적으로 공연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번 호의 주제인 ‘collaboration’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협동은 눈빛? 우리 연극이 말없이 알아채는 감각이 발달해야 되니까(웃음). 조금씩 바뀌는 생각은, 협동을 위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이런 걸 솔직하게 잘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희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렇게 각자의 부분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각자가 하고 싶은 바가 적극적으로 만나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협동은 알 수 없음이다! 누군가 결말을 미리 생각하고 있으면 협동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저는 협동이 항상 좋은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함께 추구하는 방향이 없으면 결코 좋지 않은 단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죠.”

“저는 갈등과 싸움, 부딪힘이 항상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부드러운 대화보다는 갈등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감정적인 싸움과는 다른 거잖아요?”

“협업을 위한 덕목은 ‘쎈 기’가 아닐까요? 갈등의 순간에 감정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뒤로 물러서게 되고,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남아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강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