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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016년 3월 27일, 기상청은 이날을 일최고 15.2도, 일최저 3.2도, 평균 8.4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해는 짧았고, 아침 저녁으로 차고 마른 대기에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던 오후, 파도를 따라 차디찬 바닷바람이 밀려오던 태종대 자갈마당에는 횟집들이 남해를 바라보며 늘어서서 때이른 손님을 맞고 있었다. 이때 하얀색 승용차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에선 한 남자가 내렸다. 그 남자는 이리저리 술집의 간판을 훑더니 한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두 사람이 그를 맞았다. 그 중 여자는 벌써 취기가 오른 것처럼 보였다. 


세 사람의 술자리는 한 시간 남짓 이어졌다. 이들이 술자리를 끝낼 무렵, 해는 서산 능선에 걸쳐 있었다. 일대를 감싸기 시작한 산 그림자는 바닷바람이 실어오는 냉기로 더욱 짙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인근의 대리기사 사무실로 향했다. 그 사이 여자는 술값을 계산하고 일행과 함께 남자의 차로 갔다. 대리기사를 요청하고 온 남자는 그들과 차에 탔다. 남자는 운전석 뒤, 여자는 조수석 뒤에 앉았고, 여자의 일행은 조수석에 앉았다. 10여분 후 대리기사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차는 부산역에 여자의 일행을 내려주고 여자의 집을 경유해 남자의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대리기사는 여자가 일러준 집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부산역으로 차를 몰았다.


히터의 더운 공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며 흔들리던 차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는 이마를 조수석 등받이에 기댔다 자세를 바꾸어 남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업드렸지만 멀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차는 부산역에 정차했고, 여자의 일행은 서울로 가는 KTX를 타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는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떨어지는 해와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뒤로 하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검은색 실루엣으로 변해갔다. 하얀색 승용차는 멀미를 하듯 울렁거리는 도시의 불빛들 사이를 달리며 사라져갔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연재에서 다루게 될 사건이 시작된 곳이다. 사건은 ‘유명 운동선수 아버지 성폭력 사건’으로 명명되어 인터넷 게시판으로 번졌다. 이 이야기는 인터넷 가십거리로만 머물지 않았다. 선정적인 주제를 다루는 몇몇 지상파 방송의 소재가 되었고, 사건에 대한 대응을 놓고 벌어진 갑론을박에 여러 이름이 고소 대상으로 지목되며 명예훼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이 일로 어느 죽음을 향하던 사회적 관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폭력 여부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의 재판을 통해 성폭력 사건은 무죄로 확정되었다. 이를 다시 들추는 것만으로도 가해자로 몰렸던 이와 그 주변은 똑같은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던 여자, 여자의 일행이었던 사건전문 기자는 여전히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남자를 파렴치한 가해자로 몰고 있다. 물론,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진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를 가린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우선, 이점을 살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무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따져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무고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또, 공모의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보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론’이다. 사건이 불거지고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여론은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단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일방의 여론몰이에 휩쓸려 피의자와 그 가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사회적 책임이 큰 이들의 경거망동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들의 행동은 우리 안에서 선정적인 사건·사고들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욕구에 따라 선택한 후, 적당히 사용하고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한쪽 편에서 만든 분위기에 편승해 비난을 서슴지 않았지만, 무죄가 확정된 이후에도 대부분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입장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익명성 뒤로 숨거나 새로운 이야기로 치부를 슬쩍 덮으며 책임을 회피했다.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행동은 언제든 기회만 주어지면 또 다시 누군가를 물어뜯는 날카로운 이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 또한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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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르지 않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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