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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_ongoing/◎암연: 어떤 성폭력 사건

暗然: [4편] 덮으려는 자, 밝히려는 자


2017년 7월 25일 오후 두 시. 1심 판결을 한 달여 남겨두고 사건전문 기자가 창원지방법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자는 이날 증언에서 여자와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며 거리를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이라면 사건전문 기자가 이 사건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자를 대리해 남자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남자의 아내에게 알린 장본인이다. 이후에도 그는 남자의 아내와 대화를 진행하며 '진정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그는 이 사건이 시작된 시점부터 성폭력을 기정사실로 간주했었다. 


사건전문 기자는 사건의 공론화에도 앞장섰다. 그는 시민동맹군의 대표였고, 인터넷에서는 십수 년 동안 강력사건만을 전문적으로 탐사해온 정의로운 인물로 분칠 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파급효과가 컸다. 심지어 시민동맹군 주변에는 기자가 여자의 고소장까지 대리로 작성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아마도 2017년 6월경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시민동맹군의 부대표로 있던 여자는 구성원들과의 불화가 깊어져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무렵 여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한 대목을 살펴보면 사건전문 기자의 역할을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다.


"...... 그러나, 대표님께서 해 주시는 만큼 저도 대가 지불하고 있습니다. 한달 후원금 십만원씩 냈구요, 대표님께 개인적으로 매달 오십만원씩 현금으로 후원했습니다. 어차피 사선 변호사 선임하면 비용으로 나갈거니 그 비용 대표님께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대표님께서 서울-부산 왔다갔다 하실 때 기차표나 식비 다 제가 지불했습니다. ......"[각주:1]


사건전문 기자는 그 고소장을 근거로 십여 편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기도 했다.[각주:2] 이 연재의 제목은 ‘그날의 진실’이다. 그러나 그 글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정연하게 증거를 제시하며 성폭력 피해를 논증하기보다는 남자와 그의 아내를 ‘파렴치’하고 ‘인면수심’을 가진 ‘배은망덕’한 악인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특히, 성폭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자의 아내까지 집요하게 비방한 부분은 글의 의도를 의심케 했다. 



그런데 그러던 기자가 증인신문에서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일단 그는 여자와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며 거리를 두었다. 여자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를 사용했고, 여자의 행위를 설명하며  “고소인께서”라든가 "하셨다"와 같은 경어를 사용했다.[각주:3] 또, 자신은 사건을 잘 알지 못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남자의 법정대리인은 “(여자가 사건전문 기자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건전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 저하고 고소인(여자)하고도 굉장히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피고인(남자)하고 고소인하고 먼저 만나고 가까워졌지 저는 그렇게 아주 개인적인 의사를 자세하게 나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당한 것을 어차피 저는 3자이고 그리고 남자이고 또 제가 대표를 맡았기 때문에 저한테 다 자세히 일일이 못 했지만 그래서 대강은 이야기했는데 ……”


과연 사건전문 기자와 여자는 어떤 관계였을까? 기자가 굳이 여자와 가깝지 않은 사이라는 것을 부연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할 만한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두 사람이 불화를 겪을 당시 휴대폰 메신저에서 나눈 대화다. 


■여자 : “내가 몇날며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네요. 제가 기 빨리며 내 모든 모든 것을 바쳐서 노력중인데 수수방관하는 대표? 이제서야 오빠 본 모습 본 것 같다. 솔직히 가증스럽고 대실망이다. 열심히 사쇼. 난 내 갈길 갈테니!!! 실망 대실망입니다. 지금부터 어떤 경로로 저와의 접촉 시도하지 마세요. 하긴~ 오빠같은 거불이 난 꺼들떠 보신 안겄죠.”

□사건전문 기자: “무슨 글을 지웠다는 것이지. 난 지운적이 없는데.”

■여자: “승인하시죠.”

□사건전문 기자: “무슨 글을 지웠다는 거야? 승인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의문스러운 ‘그날의 행적’

성폭력이 있었다는 그날 바로 전날인 2016년 3월 26일, 사건전문 기자는 대구에서 열리는 한 추도식에 참석했다. 추도식은 미제사건으로 남은 범죄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행사였다. 이날 추도식에도 사건전문 기자와 여자가 동행했던 것으로 보인다.[각주:4] 추도식에서는 여자가 작성했다는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사건전문 기자는 추도식을 마치고 ‘지인들’과 숙소에 묵었다고 했다. 증인신문에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 전날에 대구 ○○○ 추도식을 주관했었고 그 행사가 끝난 뒤에 지인들하고 그날 대구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고소인(여자)한테 오늘 오후에 피고인(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시간이 되면 같이 만나는 게 어떠냐, 처음에 저는 몸도 피곤하고 굳이 제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안 갈 수도 없어서 그러면 가겠다 해서 태종대에서 오후 3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사건전문 기자는 자신이 쓴 ‘그날의 진실’에도 이런 상황을 언급했다.  


“필자는 3월 26일 '○○○ 추도식'에 참석한 후 대구에서 하룻밤을 숙박했습니다. 27일 아침 부대표(여자)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는데요. '대표님, 아직 서울 안 가셨으면 오늘 오후에 저랑 ○○형부(남자)랑 만나기로 했는데, 함께 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필자와 부대표는 이날 오전 부산역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은 다음 약속 장소인 태종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증인신문 녹취서에 따르면, 사건전문 기자와 여자가 만난 시간은 27일 12시 30분경이고, 태종대로 자리를 옮긴 시간은 2시 30분이었다. 


그런데 타임라인을 하나둘 맞추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26일 대구에서 열린 추도식은 오전 11시께 시작됐다. 추도식은 20여 분 정도 진행됐고 11시 20분께부터 천도재가 열렸다.[각주:5]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모든 일정은 오전 중에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사건전문 기자와 여자, 이 두 사람은 추도식이 끝나고 무엇을 했을까? 


남자의 진술에 따르면, 다음 날 태종대에서 여자와 남자가 한 약속은 이미 정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여자가 27일 오전에 문자(이점도 불명확하지만)로 사건전문 기자에게 함께 만나자고 제안했다는 게 부자연스럽다. 행사를 전후해 그 약속을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전문 기자가 여자와 먼저 만나 점심을 먹은 이유는 무엇인가? 추도식 이후 헤어졌다가 다음날 다시 만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이 두 사람이 약속 3시간여 전에 먼저 만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굉장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사건전문 기자의 증언과는 맞지 않는 행적이다. 그리고 추도식이 있던 날 사건전문 기자와 함께 숙박했다는 ‘지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연재 ‘그날의 진실’에서 남자와 남자의 아내를 독하게 비방하던 사건전문 기자는 증인신문에서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식의 증언을 했다. 이 부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변호인: “대리기사가 가고 둘이 같이 모텔로 이동한 것은 알고 계시죠. 처음 온 대리기사.”

□사건전문 기자: “그것은 잘 모릅니다. 제가 그때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인: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았나요.”

□사건전문 기자: “전해 듣긴 했는데 그것은 제가 겪지 않았기, 있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인: “단지 고소인은 증인한테 내가 피고인에 의해서 모텔에 끌려갔다 이렇게만 전해 들 었습니까.”

□사건전문 기자: “집으로 가지 않고 나를 모텔로 갔는데 상당히 멀리 갔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만 들었습니다.” 

■변호인: “끌려갔다. 이 정도밖에 모르시고 어떻게.” 

□사건전문 기자: “예, 상당히 멀리 갔다. 어디인지는 고소인도 모르니까,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모르니까.”


과연 사건전문 기자가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한 진술은 사실일까? 2016년 12월 12일, KBS2 <제보자들>은 범죄피해자를 돕는 피해상담사가 피해자가 된 사연이라며 ‘어느 상담사의 눈물’을 방송했다.[각주:6] 이 방송의 주인공 피해상담사는 바로 여자다. 방송이 나가고 인터넷 동영상과 캡처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됐다. 사건전문 기자도 캡처 영상을 공유하며 댓글로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제가 이 사건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내용이 좀 아쉬웠습니다. 좀 더 세게 나가야 하는데요. 그래도 방송에서 다뤘다는데 의미를 두겠습니다. 기소 후에는 봇물처럼 또 방송될 것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떠벌이던 사건전문 기자는 현재, 자신이 쓴 '그날의 진실'조차 블로그에서 내렸다. 여자는 일생을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 자기의 주장에 반박하는 이들을 하나 하나 호명하며 고소 대상자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요즘, 여자는 입을 닫아버렸다.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던 그 호기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사건전문 기자의 이상한 행동은 또 있다. 


2018년 2월 무죄가 확정된 남자는 ‘성폭력 시도’조차 없었다는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여자와 사건전문 기자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몇달 후인 2018년 6월 11일. 사건전문 기자는 남자의 아내 앞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내용은 여자와의 화해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또, 자신은 누구 편도 아니라며 이 싸움을 중재해 보겠다고 했다. 만약, 사건전문 기자가 누구의 편도 아닌 제3자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중재할 의지가 있었다면, 2년 전 2016년 3월 27일 사건 직후부터 그런 노력을 했어야 한다. 


뒤늦게 저런 편지를 남자의 아내에게 보냈다는 것은 오히려 지나치게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중재를 제안하기 전에 먼저 ‘진정어린 사과’를 할 마음은 없었던 것일까? 기자는 정말 중재할 마음이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나? 어쩌면 그 편지는 중재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사건에서 발을 빼기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진술서에 첨부할 근거 자료를 마련하려는 파렴치한 의도를 숨긴 편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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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사건속으로

https://kangcd.tistory.com/50


[2편] 애초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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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아무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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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그날의 '진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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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 앞뒤가 맞지 않는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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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억지스러운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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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연_Data_01 : 사건전문 기자의 연재 10편

https://kangcd.tistory.com/60


암연_Data_02 : 시민동맹군과 여자의 분란

https://kangcd.tistory.com/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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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인용은 원문이나 기초자료에 기록된 그대로 옮겼다. 따라서 인용문에 오탈자나 비문이 있을 수 있다. [본문으로]
  2. 이어지는 글에서 이 부분도 자세하게 분석할 것이다. [본문으로]
  3. 이 법정에서 피고인은 남자이고 고소인은 여자다. [본문으로]
  4. 여자는 2016년 3월 3일 오전 11시 15분에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예고를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사건전문 기자는 3월 26일 오전 11시 16분에 페이스북에서 추도식 실황을 동영상으로 전하며 “부대표(여자)도 참석했습니다”라고 알렸다. 추도식을 주관한 단체는 행사 후기를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게시물에 사건전문 기자와 여자의 이름이 있다. 행사 전경을 담은 사진에는 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여자가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3월 28일 오전 10시에도 추도식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 추도식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잠시 쉬시면서 건강도 돌보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날은 여자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3월 27일의 다음날이다. [본문으로]
  5.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날 통신사 뉴시스의 리포트를 게재한 중앙일보의 보도를 참고했다. [본문으로]
  6. 이날 방송의 진행자인 모 변호사는 취재라는 미명하에 남자와 남자의 아내를 토끼 몰이를 하듯 몰아붙였다. 또, 인터넷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며 남자와 남자의 가족에 가하는 돌팔매질을 나무라던 한 네티즌의 실명이 방송에서 여자의 가명으로 차용되기까지 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 네티즌은 사건전문기자와 여자의 행태를 문제 삼다 시민동맹군에서 ‘강퇴’ 당한 회원이다. [본문으로]